- 발음
- [고지시카다

- 활용
- 고지식하여[고지시카여



- 품사
- 「형용사」
- 「001」성질이 외곬으로 곧아 융통성이 없다.
- 학창 시절 은사님은 성품이 고지식하고 대쪽 같으셔서 작은 잘못도 그냥 보아 넘기시지 못하는 분이셨다.
- 청백리의 전통을 고지식하게 지켜 온 마 씨 댁에서 어육(魚肉)의 비린내가 제법 풍기는 날이란 일 년 열두 달 설과 추석뿐이었고….≪서기원, 마록 열전≫
- 그가 보는 박도선 선생은, 잘라 놓은 무 모같이 지나치게 모나고 고지식한 면이 없진 않으나 그 곧고 강직한 인품이 장점이어서 시골서는 드물게 보는 인물로 여겨졌다.≪김원일, 불의 제전≫
- 이렇듯 고지식하다 싶을 정도로 옛것을 고수하는 그의 고집도 요새 와서는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.≪김흥규 외,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, 한샘 출판사, 1993년≫
- 이렇게 솔개는 아주 능청맞은 소리를 했습니다. 그러나 고지식한 황새는 이 솔개의 능청맞은 소리를 참말이라고 믿어 버렸습니다.≪이원수 외, 한국 전래 동화집, 창작과 비평사, 1980년≫
- 약삭빠른 사람들은 우직한 사람들을 비웃는다. 미련하고 둔하고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늘 뒤떨어지기만 한다는 것이다.≪임동권, 끈 떨어진 뒤웅박≫
- 그는 우둥퉁한 외모와는 달리 작전 구상과 전투 지휘에는 고지식할 정도로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지휘관이다.≪홍성원, 육이오≫
- 저 하늘과 함께 여물어 가는 농촌의 가을을 보니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을 고지식하게, 원리 원칙대로만 생각하고 싶어진 거였다.≪이문구, 장한몽≫
- 그렇다고 장사를 하자니 밑천도 없었거니와 이 또한 고지식한 그에게 될 일이 아니었다.≪손창섭, 잉여 인간≫
- 그는 무척이나 고지식해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.≪한겨레21 1997년 7월≫
관련 어휘
- 지역어(방언)
- 고진-허다(전남), 고디식-하다(황해)
역사 정보
고디싁다(15세기)/고디식다(15세기~17세기)>고디식다(16세기~18세기)>고지식다(19세기)>고지식하다(20세기~현재)
설명 | 현대 국어 ‘고지식하다’의 옛말인 ‘고디싁다, 고디식다’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. ‘고디식다, 고디싁다’는 본래 “진실하다 정직하다”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‘곧-’에 ‘-이식-, -이싁-’이 결합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. 그러나 이때 ‘-이식-, -이싁-’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‘-이식-, -이싁-’이 더 분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. 16세기에 ‘고디식-’에 ‘-’가 결합한 ‘고디식-’가 나타나면서 17세기까지 ‘고디식-’과 공존하였다. ‘고디식-’에 왜 ‘-’가 결합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. 이후 ‘고디식-’은 소멸하고, ‘고디식-’가 남아 제2음절 ‘디’가 근대 국어 시기에 ‘ㄷ, ㅌ’이 ‘ㅣ’나 ‘ㅣ’ 반모음 앞에서 ‘ㅈ, ㅊ’으로 변하는 구개음화로 ‘고지식-’가 되었다. 19세기에 ‘고지식-’로 나타난 이후 20세기에 ‘고지식하-’로 나타나면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. ‘고디식-, 고디싁-’은 이후 ‘고디식-’, ‘고지식-’로 형태가 변한 19세기까지도 “정직하다, 진실하다”의 의미로 사용되었다. 현대 국어와 같이 “외곬로 융통성이 없다”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세기부터이다. 19세기에 이들이 공존하다가 “외곬로 융통성이 없다”의 의미를 갖는 ‘고지식-’가 남은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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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형태/이표기 | 고디식다, 고디싁다, 고디식다, 고지식다 |
세기별 용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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